Scrap/Poetry2008.03.13 18:07
공원의 벤치 위에
한 사나이가 있어 지나가는 사람을 부른다
그는 코안경에 낡은 회색 옷을 입고 있다
조그마한 궐련을 그는 피우며 앉아 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을 부른다
혹은 그냥 손짓만도 한다
그를 바라보면 안된다
귀를 기울여도 안된다
그대로 지나가야 한다
못 본체
못 들은체
발길을 재촉하여 지나가야 한다
만일 그를 바라보는 날이면
그에게 귀를 기울이는 날이면
그는 당신에게 손짓을 하고 그러면 아무도
당신이 그의 곁에 가 앉는 것을 막지는 못하리라
그러면 그는 당신을 보고 웃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무섭게 괴로울 것이다
사나이는 계속 웃고
당신 역시 그렇게 웃어야 할 것이니
바로 그렇게
웃으면 웃을수록 당신은 괴로울 것이다
무섭게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당신은 더욱 웃어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당신은 벤치 위에 웃으며
못 박힌듯
남을 것이다
아이들이 바로 곁에서 뛰어 놀고
행인들은 지나갈 것이다
조용하게
새들은 나를 것이다
나무에서
나무로
그리고 당신은 거기 그 벤치 위에
그대로 남으리라
그리고 당신은 알 것이다    당신은 알 것이다
다시는 그 아이들처럼
놀지 못할 것을
당신은 알 것이다    다시는 그 행인들처럼
조용하게
지나가지 못할 것을
다시는 나르지 못할 것을
나무에서
나무로
그 새들처럼.

Posted by Lynn*
Scrap/Poetry2008.03.13 18:00

잔 안에
그는 커피를 넣었다
커피 잔에
그는 밀크를 넣었다
밀크 커피 잔에
그는 설탕을 넣었다
차 스푼으로
그는 젓는다
그는 밀크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다시 찻잔을 내려놓았다
말 한 마디 내게 없이
담배에
그는 불을 붙였다
연기로
그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재떨이에
그는 재를 떨었다
말 한 마디 내게 없이
쳐다도 보지 않고
그는 일어섰다
머리에
그는 모자를 썼다
레인 코트를
그는 입었다
비가 오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떠났다
비 속으로
말 한 마디 없이
쳐다도 보지 않고
그래서 나는
머리를 손에 묻고
그리고는 울었다.

Posted by Lynn*
Scrap/Poetry2008.03.13 17:57
나는 새(鳥) 시장으로 갔네
      거기서 새를 샀네
            내 사랑
         너를 위해

나는 꽃 시장으로 갔네
      거기서 꽃을 샀네
            내 사랑
         너를 위해

나는 고철 시장으로 갔네
      거기서 사슬을 샀네
      육중한 사슬을
      내 사랑
         너를 위해

그리고는 노예 시장으로 갔네
      거기서 너를 찾았네
      그러나 너는 없었네
            내 사랑.


Posted by Lynn*
Scrap/Poetry2008.03.13 07:56
오라, 오라.
황홀한 시간이여.

얼마나 참았나
내 영원히 잊었네
공포와 고통도 하늘 높이 날아가버렸고
위험한 갈증이
내 혈관 어둡게 하네.

오라, 오라,
황홀한 시간이여.

내맡겨진 망각에
더러운 파리떼
기운차게 웅웅거리는데
향(香)과 가라지를
키우고 꽃피우는
들판처럼

오라, 오라
황홀한 시간이여.

나는 사막, 불타는 과수원, 시들은 상점, 미지근한 음료를 사랑했다. 나는 냄새나는 거리를 기어다녔고, 눈을 감은 채, 불의 신(神), 태양에 몸을 바쳤다.
《장군이여, 황폐한 성벽에 낡은 대포가 남아 있으면, 마른 흙더미로 우리를 포격하라. 대단한 가게의 거울에! 살롱에! 온 마을이 먼지를 뒤집어쓰게 하라. 배수구를 산화시켜라. 규방을 타는 듯한 홍옥 화약으로 가득 채우라……》
오! 주막 공동변소에 취하는, 날벌레여! 서양지치 식물을 그리워하며 한 가닥 광선에 녹는 날벌레여!

[Chanson de la plus haute tour]
Arthur Rimbaud



초고

Posted by Lynn*
Scrap/Poetry2008.03.12 07:55


너를 데려가 살
집을 구했어. 집이 커.
오래된 집들처럼, 천장이 높고
바닥에는 노간주나무 널쪽 바닥이 깔려있어,
발로 밟으면, 잠들어 있는
마른 잎사귀 소리가 되살아나. 벽의 황토로 보아서는
이제 여기 붙잡아둘 게
하나도 없다는 것 같아. 책 속에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부서질 듯 연약한
꽃잎파리들처럼, 여기 모든 것은
노랗게 빛 바래가는 거 있지.
창틀 사이로는
자르지도 않는 장미덩굴이 얽혀있어,
작은 정원에는, 샘이 하나 있고
목동 신의 상이 하나. 그리고 사람들 말이
가끔 구관조들도 찾아온대.
늦가을 추운 달에는
새들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너의 눈빛이 되살아나겠지. 그 물빛의
푸르름 속에서, 나는 너와 함께
하루 하루가 죽어가는 것을 볼거야
그 어두운 가구들 속에서
너의 침묵이
먼지가 되어가는 것을 볼거야
그때는, 네가 자리한 곳마다
너의 침묵을 두들기는 빗방울을
보게 되겠지.


 

Posted by Lynn*
Scrap/Poetry2008.03.06 20:52


검은 그림자를 펄럭이며 나는 간다
소리없이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 꼭꼭 닫으며
몸 안 어딘가에 곰팡이를 기르면서
그늘과 그늘로 이어진 길다란 길을 가는 것이다

몸 속에선 소리없이 곰팡이가 자란다
밥에 핀 푸르스름한 꽃, 시간은 번식한다
추억이라는 허름한 이름으로 그해 봄
꽃이 피었고 사람들은 다가왔다가 우루루 떠났다
나는 저 들판에 거꾸로 처박힌
빈 병에라도 꽂히길 원했었지만
아무도 나의 창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런 허망한 꿈이라도 꾸는 밤은 그래도 좋았다
이제 나는 썩어가는 심장을 들고
내 몸 속에서만 자란다
사람들은 뒤돌아 서서 손가락질을 해대거나
욕을 하면서 이별을 감추리라
나는 가능한한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 썩어가고 싶지만
밥이 처음부터 곰팡내를 풍겼던 것처럼
모든 존재들은 그렇다
냄새를 풍기려고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Lynn*
Scrap/Poetry2008.03.06 18:52
붉은 가슴의 상처에서 핀
붉은 꽃 푸른 꽃으로
고운 꽃다발을 엮었습니다
님이여 나는 당신에게 그것을 바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노래의 사연을
너그러이 받아 주세요
당신의 마음 속에 사랑의 자국을 남기지 않고는
나는 이 세상을 떠날 수 없습니다
 
내가 죽거든 내 생각을 해 주세요
나를 가엾이 여기지는 마세요
괴로움에 찬 삶도 남의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나는 남 몰래 당신을 그리워 했으니까요
 
당신은 더욱 더 큰 행복을 받으시리라
나의 영혼은 당신의 머리 위를 맴돌며 당신을 지키고
당신의 마음에 포근한 인사를 한들 바람인양
보내 드릴 테니까요


Posted by Lynn*
Scrap/Poetry2008.03.06 11:02

Erinnerungen an Marie A

1
An jenem Tag im blauen Mond September
Still unter einem jungen Pflaumenbaum
Da hielt ich sie, die stille bleiche Liebe
In meinem Arm wie einen holden Traum.
Und über uns im schönen Sommerhimmel
War eine Wolke, die ich lange sah
Sie war sehr weiß und ungeheuer oben
Und als ich aufsah, war sie nimmer da.

2
Seit jenem Tag sind viele, viele Monde
Geschwommen still hinunter und vorbei
Die Pflaumenbäume sind wohl abgehauen
Und fragst du mich, was mit der Liebe sei?
So sag ich dir: Ich kann mich nicht erinnern.
Und doch, gewiß, ich weiß schon, was du meinst
Doch ihr Gesicht, das weiß ich wirklich nimmer
Ich weiß nur mehr: Ich küsste es dereinst.

3
Und auch den Kuss, ich hätt' ihn längst vergessen
Wenn nicht die Wolke da gewesen wär
Die weiß ich noch und werd ich immer wissen
Sie war sehr weiß und kam von oben her.
Die Pflaumenbäume blühn vielleicht noch immer
Und jene Frau hat jetzt vielleicht das siebte Kind
Doch jene Wolke blühte nur Minuten
Und als ich aufsah, schwand sie schon im Wind.

(Bertolt Brecht)


이야기

Posted by Lynn*
Scrap/Poetry2008.03.05 15:27
언젠가
나는 그의 말을 들었다.
그때 그는 세계를 씻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밤 긴,
실제의 세계를.

하나와 끝없는 것이
무효가 되었다,
내가 되었다.

빛이 있었다, 구원이.

Posted by Lynn*
Scrap/Poetry2008.03.05 15:23

우리가 가까이 있나이다, 주여,
가까이 붙잡을 수 있도록.

벌써 붙잡혀 있나이다, 주여,
서로 움켜잡고 있나이다, 주여, 마치
우리들 각자의 몸이
주 당신의 몸이기라도 하듯이.

기도하소서, 주여,
우리에게 기도하소서,
우리가 가까이 있나이다.

우리는 바람에 비틀비틀 걸어갔습니다,
함지와 화산이 터져 생긴 연못으로
우리는 가 엎드렸습니다.

우리는 물가로 갔습니다, 주여.

그런데 그것은 피였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흘린 피였습니다, 주여.
피가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당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여.
눈과 입은 헤벌어져 텅비어 있습니다, 주여.
우리는 들이마셨습니다, 주여.
피와 피에 비친 주 당신의 모습을.

기도하소서, 주여.
우리가 가까이 있나이다.


**본 문은 청하출판사 세계문제시인집 제 2집 파울 첼란 詩選의 [죽음의 푸가]에서 발췌했습니다.
**현대 표준어법에 어긋난 표기는 현대 표준어법에 따라 교정했습니다.

**테네브라에 :: 부활절 전 마지막 목·금·토요일에 행하는 예수의 수난을 기리는 아침기도와 찬미가 혹은 라틴말로 <어둠>이란 뜻.

Posted by Ly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