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ap/Book2008.02.13 03:39
진실과 선은 별개다. 함께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판단 기준을 세워놓고, 상대방을 바라보며 때로는 진실을, 때로는 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실과 선 가운데서 판단을 내리는 우리의 이성은, 기억이라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뼈대 위에 세워진다.……혜안은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던 자신의 사촌 동생이 울고 소리치고 온몸을 떨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너도 사실은 아팠겠지, 하는 남모를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일가. 혜안과 나는 서로를 이상한 청동 거울처럼 이용하는 사악한 흑마법사들에 불과했을까. 붙들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한 번도 우리에게 귀 기울여주지 않았던 이들을 거울 위에 불러내, 목소리로 혹은 온몸으로 그 얼굴 위에 날비린내 나는 것들을 퍼붓는.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결코 치유 따위의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시큼하고도 유쾌한 위안이었고 먹기 싫은 쓴 약을 삼키는 가장 달콤한 방식이었다고. 하지만 입을 벌리고 있어도 그런 말은 결코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소리치는 건 그렇게도 쉬웠는데.


- 윤이형 「셋을 위한 왈츠」 中, 절규
Posted by Ly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