雑想/作2009.01.23 06:49

남들은 내가 뭐 동네 북인줄 아나 껌인줄 아나, 서러워서, 원.
...라고 말한다. 묵묵히 듣는다.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어서일거라 추측한다. 침묵을 깨고 묻는다. 누가, 라고. 즐거운 화두는 아니지만 그래도 맞장구는 쳐야겠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질문일 것이다.

대화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마주하는 말, 이다. 혼자서는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 혼자서 하는 '말' 은 독백이다. 심지어는 성명서라든가, 연설조차도 굉장히 일방적이지만 완벽히 일방적이지는 않다. 담화는 청취자를 전제하고 있다. 청취자, 혹은 독자를 전제로 하는 것이 담화라면, 대화는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 두 사람. 서러워 하는 한 사람과 아무 생각 없는 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줄줄히 이어지는 서러운 사람의 토로. 아무 생각 없는 한 사람에겐 상대방이 뱉어내는 말들이 연속된 파동에 지나지 않는다. 미지근한 맞장구를 친다. 제풀에 지쳤는지 서러운 한 사람은 입을 다문다. 그제서야 아무 생각 없는 한 사람은 기쁘게 화제를 돌린다.

아무 생각 없는 한 사람은 화를 잘 내지 않는다. 화를 내면 스스로의 기력을 소모한다는 것을, 아니, 낭비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속으로만 삭인다. 괜찮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잊는 것도 순식간이다. 가라앉는 앙금은 어쩔 수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희석될 것이라 믿는다. 다만, 그게 너무 많이 쌓이면 가끔 발악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할 정도.

아무 생각 없는 한 사람은 그 서러운 사람이 말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를 곱씹어본다. 잘 알 수가 없다, 고 판단한다. 그리고 고민한다. 그렇게 뒷담화가 돌아다니는 것은, 그 뒷담화의 주인공을 다른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잘 모르겠다, 고 판단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서러운 사람이 아무 생각 없는 한 사람을 외려 만만하게 보고 있던 것은 아닌가, 하고 묻는다.

첫째로, 서러운 사람은 아무 생각 없는 한 사람과의 시간약속에 있어, 제 시간을 지킨 적이 거의 없다. 그리고는 늦겠다는 언질 조차도 없다. 반 시진 이상 기다리는 것은 예삿일이다. 그래서 서러운 사람과의 약속을 잡으면 항상 부러 늦게나감에도 불구하고 항상 기다리게 된다.

두 번째로, 약속장소에 늦게 나타난 서러운 사람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조차 없이 또 다시 자기 혼자 바쁘게 움직인다.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은 걸음이 느린 편은 아니지만, 서러운 사람은 걸음이 무척 빠른 편이다. 항상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은 배려없는 서러운 사람에게 늦춰달라,고 쉼없이 요구한다.

세 번째로, 서러운 사람은 왠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의 심경을 전혀 배려하고 있지 않다, 고 느낀다. 서러운 사람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한다, 고 생각한다. 조금 돌려 곱게 말 할 수 있는 것 조차도, 굉장히 기분에 거슬리게 말하는 것이 서러운 사람의 특기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난처하게 만드는 기술도 빼어나다, 고 생각한다.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은 서러운 사람의 대외관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다는 것에 놀란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결국, 서러운 사람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 화를 내지 않으므로, 아무 생각 없는 사람에겐 함부로 비수를 내던져도 된다고 판단해버렸다, 고 판단한다.

이 세 가지를 고려해 본 결과,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은 서러운 사람이 자신을 만만하게 보고 있다고 판단한다. 명쾌한 결론에, 어느 날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은 서러운 사람이 또 말을 함부로 놀리자 화를 낸다. 화를 내 보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낸다. 그렇지만 서러운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은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품는다. 그리고는 서러운 사람은 왠지 또 다시 일방적으로 말을 풀어낸다.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은 이번엔 맞장구도 치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은 생각한다.
대체 저 사람은 뭘 믿고 나한테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것인가, 하고 고민해본다.

Posted by 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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