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近況2008.11.09 11:17
나의 인생이 사상누각은 아닐까 겁을 많이 낸다. 나는 무척 소심하고 (심적으로) 병약하다. 속으로 앓는 마음이 심해지면 결국엔 몸 까지 망가지고 만다. 오늘 여기 계시는 한국 분들과 모여서 같이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놀았다. 나 까지 모두 여덟 명. 나는 여기 교환학생 자격으로 와 있는 가장 어린 사람. 그리고 다음학기부터 석사과정에 들어간다는 Y. 한 분은 직장인. 그리고 나머지 분들은 박사과정. 한국에 있던 나와 이 곳에 있는 나는 많이 변하지 않았다. 항상 내 나이 또래보다 다섯 여섯살은 많은 사람들이랑 어울리게 된다는 점은 특히나. 동아리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나는 항상 내 나이 또래와 어울리지 못했다. 왜인지 잘 모르겠다. 대학에 들어와서 홀로 떨어져 지내게 된다는 것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내겐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나는, Easy come easy go 이기 때문에.


얼마 전 비자 연장 신청을 했다.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큰 문제가 없으면 무사히 나오겠거니 싶다. 우습다. 아무 것도 결정 된 것은 없는데 나는 집 계약을 맺었다. 어떻게 될까.


스톡홀름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변모한다. 유령도시. 살인사건이 하루에 한 번 쯤은 신문에 나고, 그 것이 더 이상은 1면에 실리지 않는다. 점점 뒤로 밀려가고, 점점 차지하는 공간이 작아진다. 그만큼 무뎌진 걸까. 술을 마신 스웨덴 사람들, 그리고 낮에는 보이지 않는 밤의 사람들. 스톡홀름은 유령도시같다. 일요일 아침은 무척이나 고요하다. 마치 온 세상이 잠에 빠져든 듯, 온 세상이 죽어버린 듯 고요하다. 금요일 아침 첫 차 부터 일요일 저녁 막 차까지 스톡홀름의 지하철은 24시간을 달린다. 술에 취한 사람들. 이 사람들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유령도시.


나는 이 고요한 도시를 사랑한다. 술에 취하고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경찰들이 길거리에서 우악스럽게 사람을 체포해서 끌고가는 이 도시를, 나는 그래도 사랑한다.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고, 오후 4시만 되면 어둠이 내리는 이 도시를,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 도시를 나는 사랑한다.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한다. 어딜 가더라도 인간 전반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나의 영국 선생님의 말을 생각한다. 인간 전반은 다르지 않더라도 사회 전반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스톡홀름은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 나는 잘 모르겠다. 스웨덴의 인구 1/10이 이민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 곳에 와서 잘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에는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금발이 많지 않다고 한다. 금발벽안의 스웨디시 블론딘이 스웨덴에 대한 환상이라면, 환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스톡홀름은 무척 폐쇄적이라고 생각한다. 유리천장, 이라고 말했다. 한국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이라면 맥을 못 추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여전히 나는 그 꼴이 우습다고 생각한다. 추한 사람들. 백인이라면, 서양 사람들이라면 백리 밖에서라도 달려들 사람들. 유색인종들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 차별하는 사람들. 한국사람들은 대 놓고 차별한다고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이 곳에는 정말 다양한 국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갈등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들은 포용을 표방한다.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적어도 유색인종이라고 대놓고 차별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없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차별인지 아닐지 잘 알 수 없는 애매한 경우를 몇 번 마주쳤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렇지만 아까도 언급했듯, 스웨덴 사회에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미국과는 다르다. 기껏해야 반 세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유리천장을 부수고 올라서는 것은 개인차가 존재하겠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야한다. 그리고, 동년배 클라스메이트 따름, 스웨덴 사람들은 중동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편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 것에 대해 내가 무어라 따로 코멘트 할 것은 없겠다. 나도 편견으로 뒤덮힌 사람이라서, 그 것은 나쁜 것이야 라고 말 할 수 없다. 나의 편견은 유색인종따름이 아니라, 사람 첫 인상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백인이든 황인이든 흑인이든, 첫 인상이 나쁘면 편견을 갖고 대하게 된다. 그러지 않으려 노력해도 고치기가 쉽지가 않다. 주로 내가 갖는 편견은, '저 사람 무서워보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착하게 생겼냐하면 전-혀.


인생이 즐겁고 신기하다면, 나는 그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불안해도 즐거우면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래서 대학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어를 전공하고 있다. 전공을 살릴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길을 걷는 도중 스쳐지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딱히 무엇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래서 코리도 메이트 두 명이, 너는 나중에 무엇이 될거니 라고 물었을 때, 무척 곤혹스러웠다. 뻔한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나는 지금 즐거운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지금 하지 못하면 영영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은 닥치는대로 덤벼들었다. 시간은 다시 돌릴 수 없으니까.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고 싶었다. 여전히 나는 그렇게 살고있다. 인생은, 나의 인생은 노마드(Nomad) 인생. 나는 아름다움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조금은 쓸쓸하고 슬픈, 때로는 아픈 인생일지라도 길을 걷는동안 만나는 아름다운 것들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에, 나는 노마드 인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한국에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이 한국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강하게 원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다. 나는 이 곳에 더 있고 싶다. 조금만 더. 내년 여름이 아니라, 그 다음 해 여름에 이 곳을 떠날 수 있다면, 그 때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남더라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나는, 전혀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은 이 곳이 아니라 한국에 놓여있다고 하는 말로는 날 설득할 수 없다. 나의 삶은 지금 이 곳에서 현재 진행형이고, 내 인생은 이 곳에서 아름답다. 한국에 내가 원하지 않는 때에 돌아가 앓는 것 보다, 이 곳에 조금만 더 있다가, 한국에 기쁘게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 이 곳에 더 있고 싶다.


Posted by 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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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오후 4시만 되면 '유령 도시'로 변모하는 겁니까. 정녕? ^^
    비자 연장도 잘 됐으면 좋겠고요 고요한 도시 스톡홀롬에서 더 나은 대안을 이리저리 모색하시는 행복한 고민을 많이 하셨음 좋겠어요. 그리고 스웨덴에 이민자가 많군요. 고요하다는 일요일 아침 풍경도 궁금하고.. 아, 글 속에서도 Lynn님의 그 곳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단 말입니다!

    2008.11.09 22:35 [ ADDR : EDIT/ DEL : REPLY ]
    • 오후 4시가 되면 한밤중처럼 어두워지지요. 그리고 주말이 되면 스톡홀름 시내는...주중과는 너무도 달라져요. 폭발하는 것 같아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후후 고마와요.
      어제는 제가 술 마시고 들어와서 이걸 쓰고 잔 게 새벽 3시 반이라서 일어나니 아홉시더군요; 일요일 아침이, 스웨덴의 일주일 중 가장 조용한 것 같아요. 다들 술 취해서 죽었을테니;;

      2008.11.10 00:18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