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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5 Les Clowns
雑想/夢物語2008.11.05 23:06

Les Clowns.
어릿광대.

서커스를 꿈꾸었던 적이 있다. '전통적인' 서커스를 꿈꾸었던 적이 있다. 본래 얼굴을 구분할 수 조차 없이 짙은 화장에 빨갛고 둥근 코를 달고, 반짝거리는 수트와, 우스꽝스런 몸짓과 말을 하는 광대. 새 처럼, 천사처럼 까마득한 높이을 날아다니는 공중곡예사들. 외발 자전거를 타고 저글링을 하는 사람들.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는 사람들. 달리는 말 위에서 곡예를 부리는 사람들. 화륜을 넘나드는 사자. 지금 보아도 커다란 코끼리. 이형(異形), 이라기보다도 기형(奇形)이라는 느낌을 먼저 받는 어릿광대들. 어딘가 조금은 세피아색으로 바랜 사진 느낌이 나는 음악들. 탄성과 박수와 조마조마한 마음들. 천막의 한 가운데서, 공연이 끝나면 눈이 내리듯이 팔락거리며 쏟아지던 종이가루와 풍선들.

서커스의 어릿광대는, 쇼에서 가장 눈에 띄지만 나는 결코 좋아한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동물들은 모두 아름답고 신기했지만, 어릿광대만큼은 아름답지도 신기하지도 않았다.

두려움에 가까운 혐오를 느꼈다. 어릿광대는 무서웠다. 저 가면 뒤에는 대체 어떤 얼굴이 숨어있을지 겁이 났다.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기이할정도로 소름끼쳤다. 어릿광대는 그의 본디 모습보다 훨씬 과장되어 보였다. 그가 손을 뻗으면 까마득한 천막의 꼭대기까지도 손이 닿을 것 같았다. 그는 무대 어느 곳을 보고 있더라도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눈을 감아버리면, 그가 손을 뻗어 나를 덥썩 낚아챌 것 같았다. '요 못된 꼬맹이, 눈을 감다니!' 라고 호통을 칠 것 같아 두려웠다. 그의 묘하게 웃는 표정이, 아니 그의 그 가짜 웃음이 무서웠다. 그의 새빨간 혀와 검은 입 속이 두려웠다. 흑요석처럼 빛나는 그의 눈이 무서웠다. 그의 입이 째지도록 짓는 미소가 무서웠다.

나이가 조금 들었을 무렵, 세상 모든 것이 시시해 보일 무렵. 나는 그가 무척 지쳐보인다고 생각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목청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는 그가, 자신의 본래 모습보다 더 커 보이려고 과장된 몸짓을 하며 허우적거리는 그가 무척 피곤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마술쇼가 일어나는 내내 그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물러나 있음을 알았다. 그는 무척, 작아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의 기억이 남아 눈이 마주칠 때면 움찔했다. 여전히 그가 원하면 나를 움켜쥘 수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객석의 뒤쪽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그는 더 이상 무섭지도, 지쳐보이지도 않는다. 더 이상 그가 나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한 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나는 한 때 서커스를 꿈꾸었던 적이 있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서커스를.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안에서 서커스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을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는 처지가 아니라 그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서커스를 꿈꾼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기묘한 서커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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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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