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近況2008.03.08 02:58

오늘은 1,2 교시가 없는 날이라 늦잠을 잤다. 아주 오랜만에 자는 늦잠이었다, 라고는 해도 9시 전에 일어났다. 8시 30분쯤. 일어나서 주섬주섬 밥을 챙겨먹고 인터넷 뉴스를 죽죽 읽어보고 수업에 나갔다. 3,4 교시는 청강하는 이탈리아어 수업이었다. 08아이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 발랄함과 눈 초롱거림이 부러웠던 것도 있지만, 기실 내가 가장 부러운 것은 '신입생'이라는 타이틀이다. 뭐든지 가능할 것 같았던 그 때를 나는 소모해버렸다. 주워담을 수 없는 그 시간들을 낭비했다. 실패했던 것은 아니다. 그 때의 내가 있기에, 지금의 나는 중앙동아리 회장이라는 차마 스스로 말하기에 부끄럽고 버거운 그 타이틀을 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Y의 덕택에 E와 D를 비롯하야, 나를 아끼고 챙겨주는 사람들을 만났으니, '실패'라고 낙인찍을 수 만은 없는 일년을 보냈다. 어느정도는 '1년간 매우 잘 버텨주었다. 나 스스로 수고했다'는 칭찬을 해주고 싶을 정도로 꿋꿋히 버텼다.

3, 4교시 즐거운 수업이 끝나고 전공 수업을 들으러 갔다. 과목은 한영번역의 기초. 몰랐는데 교수가 바뀌어 있었다. 보통 그런 상황이라면 학과장실 조교들이 문자를 날려주어 변경사항을 알려주는게 정석이 아닐까. 스칸디나비아어과에서는 강의실 변경조차 일일히 천사 조교님께서 문자를 날려 알려주시는데, 하물며 교수가 바뀌었는데 연락 한 번 받지 못한 나는 무어란 말인가? 자율전공학부에서 넘어간 것도 아닌데 연락처가 없을리 만무할 터인데 들어가서 내가 보아두었던 교수가 아니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속이 많이 상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꾹꾹 눌러두었던 것이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들쑤시며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싸이월드 방명록에 Y가 글을 남긴 것이 아닌가. 내가 도통 MSN에 들어가지 않기에 안부차 글을 남겼나보다. 그리하여 얼른 댓글을 달고 메신저에 튀어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Y가 있었다. 이야기를 하던 차, 결국 전공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왜 방학 내내 전과할 생각을 못하고 멍청하게 그냥 시간표를 짜 버렸던 걸까. 한탄과 한탄을 거듭하다, 결국 울화가 치밀어 Y에게 '나 담배 한대 태우러 잠시 자리 좀 비울게요'라 말하고 베란다로 비척비척 기어나가 담배를 물었다. 속에선 너무 억울하고 열불이 나고 속상하고 내 스스로가 바보 멍청이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담배를 태우며 잿빛 한숨을 토해내며 내 이 울증도 얼른 사라져주기를 바랬다.


오늘 그리하여 E와 P와 홍대에서 약속을 잡았다. 만납시다, 라고. 너무 마음이 좋지 아니했던 나는 5시 50분경 집에서 나서서 273번 버스를 타고 홍대로 먼저 갔다. 홀로 앉아 마야코프스키의 시를 읽으며 글을 뱉는대로 적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학원 끝난 E가 오고있다는 말에 한 시간쯤기다렸다가 이리로 자리를 옮겼다.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니 금새 E가 도착했다. P는 연락두절이어서 어이된 일인가 둘이 궁리를 하다가, 결국 나는 또 전공 이야기로 죽는 소리를 했다. 나는 마음을 정말 많이 앓고 있었다. 싫어하는 과목 두 개를 C+를 받느니 차라리 좋아하는 과목을 듣고 C+을 받고 말겠다는 말을 내 뱉으며 죽네 사네 타령을 해댔다. E 역시 전과의 이야기를 하며 내게 말하길 '너 이번학기 학점 챙기기는 그른 것 같다. 학기 첫 주부터 죽는 소리를 하는걸 보아하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맞는 말이다. 학점 챙기기는 글러먹었다. 이렇게 학교 가기가 싫었던 적이 없었는데, 어쩌면 이리도 끔찍할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보니 P에게서 연락이 당도하였다. 우리는 학교앞 그 곳이 아니라 이리에 있으니 얼른 오라 하였고 P가 도착하여 커피를 한 잔 비우고, 맥주를 시켰다. E는 기네스 P는 호가든 나는 하이네켄. 아까 먹었던 두통약과 술이 속에서 섞여서 힘들었다. 다시금 머리가 지끈지끈. P가 오기 전에, E가 가져온 레종 나머지를 다 피우고 위의 무과수 마트에 들러 말보로 미듐을 샀다. 민증을 보여달란 말에 다시금 머리가 지끈. 사 들고 내려가던 계단에서 현기증에 구를 뻔 했다. 앉아서 말보로를 뻐끔뻐끔 피우며 술기운이 오르는 것에 다시금 두통을 느꼈다.

앉아 이야기를 하다 1시 30분경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길을 두번 건너는 동안 택시를 다 보내버리고 결국 홍대 역 앞까지 가서 하나 잡아 타고 E부터 집에 갔다.

헤어지고 집에 당도할 무렵 E가 문자를 보내주었다. 고마웠다. 내게도 항상 고마운 E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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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日記/近況2008.01.18 03:12
방학하고 한 달. 영양가 없고 팍팍한 삶을 버티게 해 주는게 있다면, 사람을 만나는 일.
오늘은 2달 여만에 사랑하는 E와 홍대를 다녀왔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는, 23시 52분차. 우리의 사랑 273 버스를 타고. E는 고대앞 정류소에서, 나는 외대앞 정류소에서. 그리고 방금까지 이지형이 열창하신 뜨거운 안녕을 미친듯이 듣다가.



E는 나보다 7살 많고, 다음학기 복학을 한다. 석사 마지막 학기, 그러니까 논문 학기이다. 사실 오늘 홍대에 나들이간 빌미는 논문거리 획득이었지만, 날이 추웠던 고로 우리는 그냥 이리까페에 주저앉아서 여느 때 처럼 잡담.

아메리카노와, E의 빨간 다이어리, 그리고 논문 수집한 바인더, 바디샵 오드뚜왈레 MUSK, 레종 D'etre Blue, 빠일럿 펜, 양초, 핸드폰 두개, 디카 하나, 메이지의 아포로 쵸콜렛, E의 필통과 나의 필통, 나의 스케쥴러.


고대 앞에서 6시 20분경에 만나서 포옹으로 인사. 근 한달만에 만나는 거라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반갑고 좋았다. 그동안 보고싶어 미치는줄 알았는데 드디어 상봉. 감격의 상봉. 오랜만이라 고개숙여 인사하고 포옹을 했다. 그리고 손 꼭붙잡고 지하철을 타고, 상수역에서 내려서 저녁을 먹었다. 밥 먹는 동안의 이야기는 지하철에서 봤던 어떤 한 남자에 관한 것.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죽 프린트해서, 16절지 사이즈의 종이에 프린트해서 사람들에게 한장씩 돌리고, 다시 수거해 가고. 그리고 수거할 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던 그 남자에 관해서.


E가 말하길 "'죄송합니다'와 '고맙습니다'는 친한 사이에서도 뱉기 힘든 무거운 말인데, 저 사람은 오늘 저걸 몇 번이나 했을까. 얼마나 돈을 받았을까. 뭐가 죄송하고 뭐가 고맙다는 걸까."


그러한 대화를 하며 밥을 먹고, E의 근황과 친구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며 홍대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는 도중 나는 E에게 "논문 다 쓰고 찍으면, 나도 한부 달라"고 보챘고, E는 보통 그렇게 주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Y는 내게 주더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E는 이어서 "어차피, 너는 내가 글 쓰면서 내내 논문 같이 볼건데, 그게 필요하냐"고 말했고, 나는 "갖고싶으니 한부 달라"고 했다. E는 내가 안주면 국회도서관에서 30페이지씩 복사할 거냐고 농담을 했고, 나는 학교 도서관에도 내부에 복사실이 있으니, 그 쪽에서라도 복사할 것이다, 라고 웃었다. E도 웃었고 논문을 주겠노라고 언질을 주었다. 날이 쌀쌀했던 고로, 손을 꼭 붙잡고 걸었다. 그렇게 걸어본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난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어야 했으나, 눈에 띄는 마땅한 것이 없었고, 우리는 목표했던 이리까페로 직행. 이리까페 들어가기 직전에 위의 슈퍼에 들어가서 아포로 한 곽과 레종 D'etre Blue 한갑을 사들고 뛰어내려가서, 우리가 처음 앉았던 그 자리에, 그 때와 같은 위치에 앉았다. 나는 E에게 기억나냐 물었고, E는 기억난다 말했다. 그 때 이후로 이리까페에 같이 온 적이 없었으니. 같이 온 건 이번이 두번째이다.


커피를 시켜놓고, 앉아서 E가 초조해 했다. 핸드아웃을 읽고서 내가 무얼 쓰고 싶은지 알겠냐 묻는 E에게 나는, 솔직하게 "좋게 말하자면 광범위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대중없고" 라고 말했다. 거짓을 말해서 논문을 쓰는 E가 찜찜한 기분을 느끼게 하느니 차라리 이 편이 낫겠노라 생각하고. E가 고민하길 어떻게 해야할까, 하길래 나는 어차피 공간연구를 할 거면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처럼 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미완성 원고이고 <아케이드 프로젝트>자체는 노트밖에 없지만, 발터 벤야민이 하고자 했던 그림은 대강 그릴 수 있었으니까. 머리속으로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10번은 세웠다가 붕괴시키곤 했었다. 그리고 꽤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E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쓰라는건 아니었고, 그 방식이 어떻겠냐는 거였다. 요지는. <홍대 프로젝트>로 바꾸어서.

이리까페의 주인(3호선 버터플라이 드럼)이 어디로 갔는지 안보이다가, 우리 잡담하는 사이에 밖으로 나가는게 보였다. 담배 한대 태우러 가나보다, 하고 기다렸다가 말을 걸자고 했다. E는 무척 긴장을 해서 그런지 손에 식은땀 까지 흘렸다.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담배 한대 태우고, 아포로 한조각 입에 물고 바Bar로 슬렁슬렁 걸어갔다. 컴퓨터를 하고 있는 사장님에게 말을 건네어 ok를 받았다. 토요일에 보잔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토요일에 시간이 맞는다면 나도 같이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번호를 받고, E는 너도 저장해 두어라 하여서 나도 사장의 번호를 더불어 받았다.


그리고 앉아 있다가, E의 곧 결혼할 친구가 온다하여 E는 그의 마중을 나갔고, 나는 앉아서 스케쥴러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올 시간이 되었는데 왜 안올까 싶었던 찰나 딱 들어왔다. 가다 엇갈렸다고. 그렇게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또 다른 E의 영국시절 친구가 오기에 우리는 그가 저녁을 먹지 않았다 하여 일어나서 역으로 마중을 갔다. 근처의 닭집에 들어가서 굶은 E의 친구는 허기를 채웠고, 나를 제외한 그들은 모두 영국시절의 공유거리가 있어 이야기를 했다. 나는 E에게서 들었던 부분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저, 그런가보다, 하며 수긍하며 들었다.

그리고 나서 곧 결혼할 E의 친구는 1400번 버스를 타고 귀가했고, 가장 늦게 합류한 친구는 지하철을 타고 갔으며, 나와 E는 273번 버스를 기다렸다. 12시 까지 버스가 오지 않으면 택시를 타기로 하고 기다렸는데 다행히도 막차는 놓치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E와 나는 조금은 우울한 이야기를 했다. 결론은 둘 다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어 미칠 거 같다'이다. 나는 일본으로 가고 싶어 미칠 것 같고, E는 에딘버러에서의 생활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학 이야기와, 학교이야기. Y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Y에게 궁금한 점이 있지만 차마 직접 묻지는 못하기에, 그냥 난잡한 추측뿐이다. 그리고 버스는 길이 막히지 않아서 순식간에 고대앞에 도착했고, E와 나는 앞으로는 우리 홍대 나가면 막차를 타고 집에 오자고 웃으면서 이야기 했다. 나도 곧 외대앞에 도착했고, 문자를 보내서 조만간 보자고하고는 경황이 없어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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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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