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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20 [박성원] 캠핑카를 타고 울란바토르까지
Scrap/Book2010.08.20 21:31
아버지는 시간의 바깥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누구나 시간 안에서 산다는 것이다. 출금시간, 회의시간, 약속시간, 시작시간, 하다못해 약 먹는 시간까지 사람들은 시간을 지키며 살고 있으며, 시간 안에 머무는 만큼 사람들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시간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사실상 죽음이다. 생산도 시간으로 따지며, 효율도 시간이다. 모든 것이 시간 싸움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시간 안에 머물며, 시간의 바깥으로 나간 사람은 그 누구도 돌보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시간이 만들어낸 체제와 제도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의 바깥으로 나가려는 사람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법을 어길 수는 있어도 시간의 경계를 벗어나진 않는다고 했다.

(중략)

"시간 안에서 살다가 제 발로 걸어 나간 사람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니?"

아버지는 맥주를 마신 다음 트림을 했다. 남들과 다름없이 살면 되지 왜 멀쩡한 시간에서 이탈한단 말인가. 그건 미친놈 아닌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거야, 미친놈이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미친놈이라니. 진짜 미친 것들은 만들어진 것에 길들여진 것이지. 무언가를 볼 때 우리는 왜 늘 눈에 보이는 대상만 보는 것이지? 왜 대상을 보는 자신의 눈은 생각하지 않느냔 말이다. 대상을 보는 자신의 눈이 잘못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비싼 돈을 들여 화성을 보려고 하면서도 자신의 눈은 보지 못하는 법이지. 적어도 내 생각엔 말이다."

아버지는 맥주를 혼자 따라 마셨다.

"만들어진 시간 안에서 길들지 못하고 뛰쳐나간 사람은 미친놈이 아니야. 그게 바로 유목민이지."

아버지는 다시 트림을 길게 했다. 유목민이라. 꽤나 근사한 말 같았다.

"시간 안에서는 모든 것들이 뿌리를 내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간을 벗어나서는 살 수가 없게 된다. 시간 안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편안한 노예가 된다는 것이야. 너무도 편해 자신이 노예인지도 모르는 노예 말이야. 하지만 진정한 유목민은 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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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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