雑想/夢物語2008.03.12 22:24
어느덧 19년 하고도 5개월 12일째.
내가 없던 시간 속에서, 그리고 네가 없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이 시점에서 만나기 이전에, 우리는 서로에게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고 있었지. 그리고 우리는 만났고, 우리는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휘청거리며 비틀거리며 어설프게 접근을 시도했지. 미숙한 날개짓에 상처도 입고 때론 울기도 하며 우리는 만났지.

내가 없던 시간 속에서,
너는 내가 없는 세상 속에서.
네가 없던 시간 속에서,
나는 네가 없는 세상 속에서.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곳에 이르렀지. 손을 마주잡지도 않고, 서로 마주보고는 있지만 윤곽만이 흐릿하게.
솔직해지지 못하는 채로, 솔직함에 상처입는 것이 두려워 우리는 벽을 만들었지. 이 정도까지만. 우리는 선을 그었지. 여기까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했지만 웅얼거림속에 묻혀 이내 들리지 않게되고야 말았지.
그래도 우리는 사이 좋다고 생각하며 만났지.
우리는,
그렇게 지금도 만나고 있지.

비틀거리며, 휘청거리며
어설프게 접근하고 있지.

나는
네가 없던 나의 세상을 기억해본다.
너와의 1년을 추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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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日記/近況2008.03.12 00:27
개강하고 첫 주간세미나를 가졌다. 사실 겨울방학동안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세미나를 안 하고 쉬었을 뿐더러, 개강은 지난 주였으니 오늘이 2회가 되어야 정상이지만, 지난 주 역시 내 사정 편한대로 하지 않고, 결국 날치기 발제와 공고로 오늘 세미나를 했다. 참여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6명 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와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발제 도서는 생텍쥐뻬리의 <어린 왕자Le Petit Prince>였다. 급하게 하는 고로, 다들 한 번 쯤은 읽어보았을 만한, 한 번 쯤은 들어보았을 만한 도서를 선정했다. 발제는 당연히 내가 맡았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얇다는 것이 무척 좋았다.

발제문은 다음과 같다.

발제문을 읽는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다 싶다면, 이전 포스팅의 '소통'에 대한 연장선이라 보면 되겠다. 급하게 쓰느라 비문도 많고 오타도 많다만, 그래도 의미전달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게다가 발제는 내가 읽으면서 하기 때문에, 중간중간 비문은 그 자리에서 고치면서 이야기를 했다.

5명의 이야기와, 필기자 겸 사회자인 나의 첨언. 5명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통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했다. 저 발제의 핵심은 마지막 발제이다. '현대 철학의 나르시시즘'에 관한 것이 주로 내가 하고팠던 이야기이며, 그 것은 내 안에 있어서 소통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동아리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이야기를 했으며, 그게 비록 마음속 깊이에서 스스로도 규정할 수 없었던 답이라 할지라도, 나는 어느정도 그 안에서 열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세미나는 대 만족이었다. 얼른 레포트를 작성하고, 번역 일을 끝낸 후에 오늘 세미나 회의록을 정리해서 동아리 클럽에 올려두어야겠다.

오늘 함께해주었던 동아리분들께 삼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첨언) 오늘 조금 늦게 귀가했는데, 집에 들어왔을 때 며칠 전에 데리고 온 히야신스가 꽃을 피우고 나를 맞아준다. 새하얗고 보드랍고 달달한 꽃잎이 슬몃 고개를 들고 반겨주어, 매우 기뻤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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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日記/近況2008.03.10 23:49

요즘, 이라고 말하려니 언제부터를 '요즘'이라고 잡아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또한 돌이켜 생각하여보니 근래부터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서 단어를 찾는다. 그리하여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지'를 택한다.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소통疎通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한자를 풀어 이야기하자면 막힘이 없이 통한다는 의미이다. 시원하게 뚫려서 통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내가 앓고 있는 소통의 문제는 '타자와의 소통'이다.

선천적으로 대외적이고 밝은 사람들이 있어 주변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누구와도 데면데면하지 않고, 모두에게 사근사근하며 말을 잘 붙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반면, 내성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며, 타인이 접근해오면 자신의 방어벽 안으로 숨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전자의 경우였지만, 어떠한 계기를 통해 후자의 경우에 속하게 되었다. 내가 만일, 처음 보는 사람에게 데면데면하게 굴지 않고 말을 툭툭 던지는 경우가 있다면 그 때는 1) 정신줄을 놓고 있다, 2) 두번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이다, 3) 그 상대가 편하고 진심으로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 의 경우에 따른다. 세 번째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지금 친하게 지낸다는 사람들과도 처음에는 뻣뻣하게 굳어서, 그렇지만 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친해질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오해없이 저 사람들이 나를 봐 줄지 전전긍긍했다. 대부분, 내가 말을 쉽게 붙이는 경우는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정신줄을 놓으면, 이미 이성적 사고가 절반쯤은 불가한 상태이므로 물론 말할 나위 없이 상대방의 말도 제대로 못 듣는다.

이런 식으로 겪는 소통의 문제이다. 낯가림이 심한 탓에,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건다면 얼굴이 붉어지고 심박수가 널뛰기를 한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이 다가오지 못하게 벽을 만들고 있다. 이를테면 평소에는 멍한 무표정이라든가, 남이 보아 첫 인상에 '너 처음에 되게 무서웠어' 라고 말할 정도의 오오라를 방출해 낸다든가. 아마도 내가 정말 벽을 치고 싶다면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을까 싶다(내가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벽을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강하지만, 어쨌든 비흡연자의 입장에서는 저 사람 다가서기 난감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더 먼저 형성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벽을 치고 있다고 보아도 만무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역시, 소통의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근 1년간, 나는 과 친구들과 수인사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친해진 학우가 거의 없다. 어떻게 보면 내 쪽도 적당히 그들을 무시(여기서 말하는 무시는 깔보는 무시가 아니라 못 본척의 무시)하고 지내고 있으며, 그에 응하여 다른 학우들도 나를 적당히 무시하고 지나간다. 결국 나는 과 학우들과 소위 말하는 베스트 프렌드 라는 관계가 단 한 명도 없다. 과연 이렇게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면, 누군가 나를 기억은 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원한 관계이다.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는다. 이 것은 내 불찰이다만 나는 우리 과 학우들 이름도 다 모른다. 과 학우들 중에서도 나를 모르는 이가 없잖아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한다.

2학년이 되어서 생긴 소통의 문제라면 이중전공 하는 과 아이들과의 문제. 그들과는 적어도 1년을 얼굴을 익혔지만, 결국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갈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1학년 1학기때, 내가 A0를 받음으로 인해, 그 과의 누군가는 성적을 더 낮게 받아야 했을터이니 말이다. 게다가 이중전공 하는 과는 소수어과인 탓에 내가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를 신경써 주던 선배들 조차 지금은 단 한명도 그 과에 남아있지 않으며, 그나마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낼 정도이다.

이런 소통의 문제를 앓는 이유는 내가 굳이 애써 벽을 넘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가 그들과 동화되려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받아주지 않을 것에 대한 지레짐작으로 앓고 있다. 사실, 그 것은 직접 부딪혀 보지 않는 이상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만, 나는 홀로 피해망상에 시달리며 고뇌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사 소통의 문제는 항상 어렵다. 위의 이야기 처럼 아예 소통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나 하면,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긴 상태에서 무심코 뱉은 말에 오해의 씨가 숨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가, 혹은 얼마나 잘 알고 지냈는가에 따라서 관계 회복이 가능하기도 때로는 돌이킬 수 없기도 한다. 나 역시 실언으로 인해 잃은 친구들이 있다. 지금와서 친구라 언급하기도 남사스러우니 사람들 이라고 호칭을 바꾼다.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트는 것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데에는 1주일도 걸리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나의 진심을 왜곡없이 전달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지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지 않고, 자기의 잣대를 벗어나 진정으로 마주볼 수 있는가? 왜 우리는 타인을 왜곡해서 바라보는가?

이러한 것은 단순한 소통의 문제를 떠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는다. 현재, 나와 같이 이런 문제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본다. 혹여는 아예 마음을 편하게 먹고 집착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능숙하게 만사를 잘 처리하는이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서라도 오해는 생겨날 수 있고, 사소한 것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나는 진정으로 '타인'과 마주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나는 소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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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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