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0.05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2. 2010.03.04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3. 2008.07.07 김중혁, 그리고 김연수
Scrap/Book2010.10.05 22:01
그들의 아파트로 들어가기 전날, 나는 정중하게 베르크씨에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 제2악장을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이었으므로 베르크씨는 이웃들 모두에게 허락을 받아오면 연주해주겠노라고 말했다. 내가 당장 허락을 받아오겠노라고 말한 뒤, 밖으로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 피아노 건반의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처 몸을 돌리기도 전에,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이는 밤의 사물들을 손끝으로 하나하나 매만지는 듯한 피아노 선율이 울리기 시작했다.

(중략)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저녁이에요. 동쪽 하늘을 파랗고 거기로 별이 떠올라요. 하지만 서쪽을 보면, 아직 빛이 남아있는 거죠. 요즘 베를린의 밤처럼 말이에요. 밤이 깊었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빛. 모든 게 끝이 난다고 해도 인생은 조금 더 계속되리라는, 그런 느낌."

"해진 티셔츠, 낡은 잡지, 손때 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 케이스, 군데군데 사진이 뜯긴 흔적이 남은 사진첩,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사물들 속에 깃들지. 우리가 한번 손으로 만질 때마다 사물들은 예전과 다른 것으로 바뀌지. 우리가 없어져도 그 사물들은 남는 거야. 사라진 우리를 대신해서. 네가 방금 들은 피아노 선율은 그 동안 안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 됐어. 그 선율이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몰라. 그건 결국 늦게 배달되는 편지와 같은 거지. 산 뒤에 표에 적힌 출발시간을 보고나서야 그 기차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기차표처럼. 안나가 보내는 편지는 그런 뜻이었어.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pp. 376-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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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Scrap/Book2010.03.04 19:41
눈동자. 내 눈동자. 두 개의 검은 눈동자. 서로 연결돼 있으되 귀와 코와 입과는 전혀 다른 기관. 듣고 맡고 맛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단 하나의 감각.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건 믿는다는 것. 그러기에 귀와 코와 입을 의심할 수는 있지만, 눈을 의심할 수는 없다는 것. 의심할 수 없기에 충분히 인간을 미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물론 내게도 그런 눈동자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캄캄했다. 그 무엇도 내 망막에는 맺히지 않았다. 검정이 검정을 직시할 수 없듯이 이 모든 암흑을 검은 눈동자는 바라볼 수 없기에 나는 어둠을 믿지 않았다. 그런 눈동자. 내 눈동자. 당신의 눈동자.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 어둠을 믿을 수 없는 눈동자. 자신과 다른 것만을 알아볼 수 있는 눈동자. 바라보는 바를 믿어 의심치 않는 눈동자 ... 눈동자. 내 눈동자. 두 개의 검은 눈동자. 어둠을 보지 못하고, 또 믿지 못하는 두 개의 검은 눈동자.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216-226)
서울: 문학과지성사(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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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日記/近況2008.07.07 23:42
오늘 '한겨레, 책을 말하다'에 초청받아서 다녀왔다. 나는 풀집회원으로 신청해서 갔다. 사실, 김연수씨는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정작 책은 단 한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6일, 급하게 저녁 때 교보에 나가서 사 온 <여행할 권리>가 처음으로 읽는 책이다. 그것도, 다 읽지 못하고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조금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김중혁씨는 지난해 겨울 느즈막이 도서관에서 <펭귄뉴스>를 접하고, 앗 이렇게 재미있는 작가가! 라는 감상이랄까. 이번에 새로 나온 도서 <악기들의 도서관>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두 달 전,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주관했던 젊은작가 초대전이라는 낭송회에서 유리방패, 라는 작품을 먼저 접했던 경험이 새록새록. 그 때는 기기상의 문제로 인해서 난관을 겪은 김중혁씨였는데, 이번엔 영상을 튼다든가 하는 것은 없었으니까.

두 작가분의 대담은 마치 만담을 보는 것 같았다.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되지 않는 농담이 오고가면서 좌중은 웃음바다였달까. 좋았다, 무척이다. 특히나 김중혁씨를 두 달만에 다시 보게 되어 기뻤다. 하하하...근데 이건 무슨 조화?;; 시월에 스웨덴으로 오신다네?! 그러면 난 감라스탄에서 얼쩡거리고 있다가 만날 수도 있는 것인가!!! 우와!!! (라고는 하지만 스톡홀름이 의외로 넓어서 과연...김중혁씨가 시월부터 2~3달 체류한다 말한 기간내에 우연히 스쳐 지나갈 확률이 얼마나 될 지는...)
옹...가서 만나면 무척이나 좋고 반가울 것 같다. 김중혁씨는 어떨 지 몰라도,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래는 일이 아닐까 한다.

홍...
오늘의 행복한 결론은 그리하여, 김중혁씨의 싸인을 받았다!!! 만세!!! 펭귄뉴스 무척 재미있게 봤어요, 라는 말에 펭귄을 그려주셨다!!! 맙소사, 완전 귀여워!!! 감동이었습니다. 흑흑.
김연수씨의 싸인도 받았다. 기자분과 인터뷰 내용에서 말하는 데 내공이...내공이...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싶었다. 시간을 틈틈히 내서라도 읽어야 겠다.
낭독하신 부분을 들으면서 나도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고개가 끄덕, 하는 내용이었달까.

호호. 사실 김중혁씨의 소설을 읽을 때 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마치...보르헤스나 미하엘 엔데, 브루노 슐츠와 같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달까. (나름 내 기준에서는 환상문학 작가들이다. 무척 좋아한다. 하하하) 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그 것도 무척 기대되는 바이다. 한국 작가들의 글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김중혁씨는 좋아하는 작가이고, 기대하는 작가이다. 신작이 나온다면 사서 보고 싶다. (사실 동인지나 계간지를 다 사서 모을 수가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오늘 두 작가분의 유쾌한 대담에, 꿉꿉한 저녁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습기와 더위를 잊고 있었달까. (장소는 홍대 까페, '창 밖을 봐, 바람이 불고 있어. 하루는 북쪽에서 하루는 서쪽에서' 의 3층 스카이 라운지였다. 에어컨도 없고 나름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두 분의 만담같은 대화를 듣고 있자니 더위를 잊었다. 하하)


음...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스톡홀름에서 김중혁씨를 우연히 만나는 것.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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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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