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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5.08 스피킹인텅스
感想/其の他2015.05.08 19:23

 

스피킹인텅스 Speaking in Tongues - 잃어버린 자들의 고백

 

무언가를 상실한 아홉 등장인물의 이야기. 올해가 초연.

 

레온/닉 역에 강필석과 이승준이, 피트/닐/존 역에 김종구와 정문성이, 쏘냐/발레리 역에 강지원과 전익령이, 제인/사라 역에 김지현과 정운선이 캐스팅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배우는 강필석, 김종구/정문성, 전익령, 김지현/정운선. 조만간 전 캐스팅을 다 보지 않을까. 뭐 아직 두 번 밖에 안 봤고, 5월 1일부터 7월 19일까지하는 만큼 1)시작한지 얼마 안 됨 2)끝나려면 멀었음-이니.

 

무척 흥미로운 극이었으나 그다지 유쾌할만한 소재는 아니다. 외도라든가. 어딘가 어그러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유쾌하려야 유쾌할 수 없겠지. 그리고 나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을 살면서 평탄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삶을 살았으니까. 여러 등장인물들에게 여러모로 감정이입을 하고 내 자신을 연소시키면서 봤다.

 

그나마 가장 이입이 덜 됐던 배역이 닉. 닉은 사실 내가 이입하고 뭐 하고 할 여지가 없이 접점이 없었어. 가장 많이 이입-했다고 해야하려나 감정 소모가 컸던 배역은 제인. 제인은…나의 거울같은 그런 느낌이어서 깨부수고 싶었다. 그래 내 내면엔 저런 사람이 살고 있지, 난 네가 싫어. 그리고 사라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라와 닐 모두에게 깊이 공감했다. 쏘냐와 발레리는 내게 비수를 던졌고. 나머지 배역들은 그냥저냥.

 

말로 설명하자니, 설명을 잘 못하는 내겐 너무나도 어렵구나. 얼기설기 얽힌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이 연극의 묘미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이야기가 다른 공간(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하나의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특징이 있어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러웠으나, 금세 적응했다. 겹쳐지는 대사와 겹쳐지는 제스처들. 그런 와중에도 엇갈리는 대사들이 흥미롭다. 잘 포개어진 듯해도 잘 들여다보면 엇나간 것 같은 그런…?

 

내가 감정 소모를 크게 하면서 봤던 부분이라면 역시 자존감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려나. 쏘냐와 제인이 술집에서 만나고, 이 둘이 얘기를 하는데 제인이 '여자들이 그런 게 있잖아요, 뭐든 자기 잘못 같고' 라고 하면 쏘냐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더 그런 경향이 있죠' 하는 흐름의 대화를 나누는데 그 대사가 내겐 너무 아팠다. 요즘 내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스럽게 느껴져서. 그게 다 자존감이 바닥이라 그런 것도 잘 알고 있어서. 정확히 말하자면, 아픈데 원인은 모르겠고 죽을 것 같았는데, 이 대사를 듣고 아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 하고 깨달았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 이젠 돌이킬 수도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린 내 자존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연극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면 나는 정말 어떡하란 말입니까.

 

제인이 하는 얘기 중에 옆집 부부인 닉과 파울라 얘기가 나온다. 1막의 마지막에서 제인은 자신에게 돌아온-정확히는 자신의 외도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돌아온 남편에게 옆집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설명은 귀찮으니 궁금하시면 스피킹 보세요. 아무튼 그 얘기의 마지막에 파울라는 남편에게 '당신이 그랬느냐'고 묻고 닉은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파울라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닉이 여자를-발레리를 죽이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는데에. 제인은 피트에게 말한다. 당신이 만약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고, 모든 상황이 당신에게 적대적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것 이상이 필요했을 거라고. 확신을 가질만한 무언가가 필요했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만으로 충분해야 하는 거라고. 그래, 내게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절이 있었지, 하고 정말 너무너무 아팠다. 모든 상황이 내가 아끼던 사람에게 적대적으로 돌아가도 나는 그 사람의 말만으로 충분했지. 아니라던. 아니었다던, 말만으로도 충분했었는데. 결국엔 그것마저도 거짓이었지만. 씁쓸하다. 여하간 여기서 비수를 엄청 세게 맞아서. 곰곰히 돌이켜 생각하면서 울었다. 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만약 그때 좀 더 현명하게 굴었더라면-하지만 그때 내게는 그럴 용기도 없었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될 더 큰 이유가 있었지. 그래서 나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고, 그리고 결국 궁극적으로는 닐에게도 공감하게 만드는 사건이, 내가 아꼈던 사람 덕분에 생겼다.

 

닐은 사라의 전 연인이다. 둘은 약혼했던 사이로 어느 날 문득 사라가 유럽여행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닐-아마도 갈색브로그를 신었을 그 남자-은 사라에게 줄기차게 집착하며 대답을 원한다. 왜였냐고. 왜였냐고. 나 역시. 왜였냐고, 왜 그랬어야만 했느냐고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지금와서는 정말 공허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나는 그 아꼈던 사람을 더 이상 아끼지도 사랑하지도 않아. 정말 천만 다행이지.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왜였는지, 대답해 줄 수는 없었는지, 왜 대답을 피했는지. 난 지금도 가끔은 당신의 그림자를 찾는다고-.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면서. …쓰면서도 미친놈 같군. 그만 해야겠다. 닐은, 여하간, 이런 이유로 굉장히 아프게 이입하면서 봤다.

 

그리고 사라는 묻는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사람이 여전히 날 사랑할 권리가 있는지. 그 사람은 여전히 궁금해 한다며 미칠듯이 짜증-을 낸다. 나는 사라에게 이입하면서도 동시에 궁금하다. 사람을 사랑하는데 권리가 필요한 것인지. 사랑할 권리라는 게 있는 것인지.

 

사라는 사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소유가 중심인 관계를 원하지 않는 사라는, 관계에 있어 주도권을 쥐고 싶어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사랑하게 되면-즉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하게 되면 두려움(?)을 느끼고 떠나간다. 그래, 내가 그렇거든. 하지만 난 잘 모르겠다. 소유하고 싶은 걸지도. 나는 주도권을 쥐고 싶다. 내가 중심인 관계를 원한다. 내가 쥐고 흔들 수 있는 그런 관계. 하지만 동시에 나는 겁도 난다. 저 사람이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 멀어지면 어떡하지. 결국 관계에 집착하게 되고 질척해지는 건 시간문제지. 나도 이게 문제란 걸 잘 알아. 나는 항상 이런 식이지. 그런데 어쩌겠어, 고칠 수가 없어.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자꾸만 그래. 자꾸만, 쥐고 흔들고 싶어. 사라가 선생님 저 아픈가요? 라고 말할 때 발레리가 그래요 당신 아파요! 하고 외칠 때 비수 꽂혔다. 발레리 내게 칼 던지지 마요.

 

제인에게 감정 소모가 가장 컸던 이야기를 좀 하자면. 내 거울같은 사람이어서 그게 너무 힘들었다. 물론 나는 결혼은 포기했으니까 남편이 생길 일은 없겠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내 거라고 주장할 만한 이렇다 할 것도 없이 나이들어가고 있으니까. '두려운 거예요, 변화가.' 그래, 그래서 나는 자꾸만 변화를 최대한 멈추고 싶어한다. 이대로, 이대로. 어쩌면 그래서 내가 발전이 없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문득 희미하게 들지만, 그래도 나는 두렵다. 무언가가 변하는 게. 그리고 동시에 도태되는 것도 두렵다. 어쨌든, 도태되는 것 역시 상황의 변화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 극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이라면 역시 나에게는 발레리의 실종이겠다. 발레리는 왜 실종됐는가. 남편에게 '사랑해'라며 '집에 가면 예전처럼 밤 새도록 얘기해'라던, 그런 발레리는 왜 실종됐는지 어디로 사라진 건지 너무도 궁금하다. 이 부분만큼은 아무리 생각해도 끙끙거려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배우들(발레리역 & 존역 배우들)이나 연출은 어떻게 생각할지 무척 궁금하다. 관대날 누가 이 질문 했으면 좋겠다...소심해서 차마 내가 하지는 못하겠고.

 

여하간 이렇게 저렇게 배역들에 이입하면서 아프지만 재미있게 보고 있는 연극이다. 이 정도로 집중해서 보는 연극은 상당히 오랜만인 것 같다. 기회가 닿는 분들은 한 번씩 보시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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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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