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近況2010.09.07 23:11
미숙한 사랑은 "널 필요로 하기 때문에 널 사랑해" 라고 말하며,
성숙한 사랑은 "널 사랑하기 때문에 널 필요로해" 라고 말한다.

─에리히 프롬,「사랑의 기술」중



8월 31일부터 9월 6일까지 제주에 있었다. 있는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참 많았는데. 어쩌면 고백에 더 가까웠을 하고픈 말들이 터질듯 밀려올라왔지만, 어쨰서인지 한 음절도 인후를 넘지 못했다. 항상 나보다 늦게 잠에 드는 그이기 때문에 그가 잠들기를 기다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왜인지, 그는 내가 잠들지 않으면 잠들지 않으니까. 낮잠에서 깨면 말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내 뇌를 탓해야 하는걸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위에 인용한 구절이 나온다. 그러니까 난 어쩌면 미숙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테다. 정작 내가 미숙한 사랑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가 성숙한 사랑을 하길 바라는 내게 새삼 경멸을. 그렇지만 애정관계에 놓인 사람이라면 어쩌면 당연한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필요해서 날 사랑하는게 아니라, 날 사랑해서 (그래서 내가 없으면 죽을테니) 날 필요로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

전에 그가 내게 물었다. 자기가 고백했을 때 왜 그렇게 선선히 받아들였는지. 어물쩍 웃으면서 넘겼고, 그는 농담인지 아니면 어물쩍 넘어가는 내 태도에 어느 정도는 상했을 법한 기분을 숨기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진심이었는지 "전부터 날 좋아했던거구나" 하고 웃어주었다. 그래, 뭐, 부정하진 않을게. 어떻게 7년 넘게 알아오면서 한 번 정도 설레지않았을 수가 있었겠니. 내 말에 귀기울여 주는데, 신경 써 주는데. 상냥한 사람에게 약한 내가 나빴던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 후, 곰곰히 그리고 찬찬히 시간을 들여 생각해봤었다. 그러니까, 내가 안고 있는 어딘가 채워지지 못한 것 같은 기분과, 여러 가지 복합적 감정을.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내 행동의 정당화를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내게 그어놓은 선을 부주의하게 넘어가버린 탓에, 진심이 깃들었던 마지막 충고를 가벼이 들었던 내 경솔한 행동을 정당화해야 했으니까. 내가 날 경멸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던, 그런 결정을 난 택했다. 자책과 후회의 바다에서 익사직전이었던 내가 잡을 수 있었던 유일한 지푸라기는, 그의 날 사랑한다는, 그러니 곁에 있어달라는 말 외에 뭐가 있었을까. 말하고 싶었다. 난 그래서 당신의 고백을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였노라고. 한때 좋아했었을런지 모르겠으나, 실은 그 때 다른 사람과의 망가진 관계에 눈물흘리고 있었노라고.

그리고 난 지금 경계에 서 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필요해서 사랑하는 것과 사랑해서 필요한 것의 경계가 애매모호해지고 있다. 나는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서 그가 필요하고, 그래서 또한 사랑하고 있다. 그렇지만 같이 있으면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귀에 들리지 않을 만큼, 모든 계산적인 허울을 벗어버리고 진심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만이 남는다. 단 하나 부정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이 많은 말들을 다 해주고 싶었었는데, 결국 단 한 마디도 못 해보고 떠나오고 말았다. 언젠가는 할 수 있을까. 내게 그런 용기가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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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TAG 근황
Scrap/Poetry2010.08.27 13:41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생길 때 비로소 슬픔은 완성된다.

한 고통에 묶여 다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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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Scrap/Book2010.08.20 21:31
아버지는 시간의 바깥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누구나 시간 안에서 산다는 것이다. 출금시간, 회의시간, 약속시간, 시작시간, 하다못해 약 먹는 시간까지 사람들은 시간을 지키며 살고 있으며, 시간 안에 머무는 만큼 사람들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시간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사실상 죽음이다. 생산도 시간으로 따지며, 효율도 시간이다. 모든 것이 시간 싸움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시간 안에 머물며, 시간의 바깥으로 나간 사람은 그 누구도 돌보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시간이 만들어낸 체제와 제도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의 바깥으로 나가려는 사람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법을 어길 수는 있어도 시간의 경계를 벗어나진 않는다고 했다.

(중략)

"시간 안에서 살다가 제 발로 걸어 나간 사람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니?"

아버지는 맥주를 마신 다음 트림을 했다. 남들과 다름없이 살면 되지 왜 멀쩡한 시간에서 이탈한단 말인가. 그건 미친놈 아닌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거야, 미친놈이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미친놈이라니. 진짜 미친 것들은 만들어진 것에 길들여진 것이지. 무언가를 볼 때 우리는 왜 늘 눈에 보이는 대상만 보는 것이지? 왜 대상을 보는 자신의 눈은 생각하지 않느냔 말이다. 대상을 보는 자신의 눈이 잘못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비싼 돈을 들여 화성을 보려고 하면서도 자신의 눈은 보지 못하는 법이지. 적어도 내 생각엔 말이다."

아버지는 맥주를 혼자 따라 마셨다.

"만들어진 시간 안에서 길들지 못하고 뛰쳐나간 사람은 미친놈이 아니야. 그게 바로 유목민이지."

아버지는 다시 트림을 길게 했다. 유목민이라. 꽤나 근사한 말 같았다.

"시간 안에서는 모든 것들이 뿌리를 내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간을 벗어나서는 살 수가 없게 된다. 시간 안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편안한 노예가 된다는 것이야. 너무도 편해 자신이 노예인지도 모르는 노예 말이야. 하지만 진정한 유목민은 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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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日記/近況2010.08.19 22:19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혹은 기억)에 기인한 것일 터이다. 문득─요샌 참 자주 문득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데─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봐 줄 사람이 있는 것도 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자기 자신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은 드물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나 아닌 타인이 표정도 없고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는 뒷모습을 묵묵하게 오랫동안 바라봐주는 것은 그 상대에 대해 참 고맙게 생각해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텅 빈 뒷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봐주는 것에 대해서(이런 말을 한다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감사하다고 느끼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근황을 얘기하자면
11일에는 <2010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을
18일에는 <파라다이스1, 2>(베르나르 베르베르 작)를
19일인 오늘은 <세계의 끝 여자친구>(김연수 작)를 읽고 있다.

아마 내일이면 다 읽지 싶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작년 내내 먹는걸로 풀었던 참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끊임없이 뇌에 무언가를 쑤셔넣는 기분이 든다. 물론 체중을 한없이 늘려서 몸이 비대해지고 보다 깊은 자기혐오의 나락으로 떨어져가며 건강을 좀먹는 행위보다야 훨씬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좋은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탐독의 계절이 돌아오려는 신호인가.


내일부터 다음주 월요일까지는 다시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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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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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記/近況2010.08.19 00:56
지그시 날 누르고 있는 현실이라는 압박감. 휴학계를 냄으로써 나는 일단 현실도피를 도모한다. 씁쓸하게 웃으면서 다시 "현실, 안녕" 해야할 것 같지만. 실은 지난 학기, 그러니까 10학년도 봄 학기를 쉬고 싶었다. 무척이나 매우 많이. 그렇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모든게 어그러져버린것 같은 피해망상과도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그러진 것은 사실이나, 내 잘못이 아니야, 난 피해자야, 라는 그런 싸구려 망상이랄까 (토 나온다 진짜).

문득
난 눌려있기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그시
아래로
눌리는 것이

묘한 안정감을 준다. 현실에서 발이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종종 들 때, 내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서 있게 만들어주는 적절한 무게감이 좋다. 몸에 닻이라도 있더라면, 혹은 추라도 매달려 있었더라면 하고 바란다.

뭔가 문득 '닻' 이란 단어가 나와서 말인데. 태아 초음파 사진을 보면 (보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태아는 태반으로 어머니에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뭐랄까. 자기 자신의 세상(어머니의 자궁 속)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안하고 안정적일 수 있도록.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닻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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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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